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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이것이 지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6억 5천만 년 전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느리게 살고 있습니다. 한자 이름도 소처럼 느리다고 해서 와우인데요. 느림의 대명사일 뿐 아니라 작음의 대명사이기도 해서 와우각상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세상이 와우만큼 작다는 뜻이죠. 이렇게나 작고 느린 와우지만 공룡도 버티지 못한 6억 5천만 년 동안 생존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팽이라고 부릅니다. 이리 보면 둥그런 달을 닮았고, 저리 보면 팽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달팽이. 옛날에는 팡이라고 불렸다는데, 껍질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달팽이들에게 껍질은 단순히 숨고 잠자는 곳이 아니죠. 새는 껍질을 깨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고 나비는 껍질을 벗어야 세상을 날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달팽이는 껍질이 깨.. 2023. 3. 9.
홍재하 홍재하는 최초의 재불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거쳐 1919년 프랑스의 작은 도시 스위프에 정착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건물이나 철도 등을 복구하는 현장에서 노동했고, 힘들게 번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자금을 댔습니다. 또 3. 1 운동의 정신을 선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렇지만 '홍재하'라는 이름은 아직도 우리에게 생소하고 실제로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최근인 2018년의 일입니다. 홍재하는 프랑스여성과 가정을 꾸렸고 조국이 해방되면 모두 데리고 돌아간다는 꿈을 꾸었는데요. 해방정국은 혼란스러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6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유품으로 편지와 스크랩해 둔 기.. 2023. 3. 1.
축제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축제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3월이면 열렸던 광양과 원동의 매화축제, 구례의 산수유 축제가 4년 만에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4년 만에라는 말이 묵직합니다. 4년이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마지막 학년이 되는 세월이죠. 한국전쟁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일상에 타격을 주었던 일이 또 있었을까요. 축제가 돌아온다는 말은 일상을 회복한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 일상이 이전의 일상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4년여의 시간 동안 이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고 더 이상 적용되기 힘들 것입니다. 이 중 많은 부분이 인간관계이기도 하죠. 만날 수 없다가 만나지 않아도 된다가 되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의 아니게 확인했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체.. 2023. 2. 28.
나스레딘의 일화 이슬람의 현자 나스레딘에게는 13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죠. 아버지 나스레딘은 아들에게 시장에 함께 가자고 합니다. 나스레딘이 당나귀를 탔고 아들은 옆에서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자기는 당나귀 등에 편하게 앉아가면서 불쌍한 아들은 걷게 하다니....., 인생을 누릴 만큼 누렸으니 아들에게 자리를 양보해도 좋을 텐데 말이야." 다음날에도 나스레딘은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갑니다. 전날과 반대로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아버지가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저 녀석은 버릇도 예의도 없군. 불쌍한 노인네를 걷게 만들다니....., " 세 번째 날에는 당나귀를 끌고 걸어서 길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저런 멍.. 2023. 2. 27.
결혼생활의 경의 부부동반 모임에서 남편이 기름기 많은 튀긴 닭을 집어 들었습니다. 아내가 대신 샐러드를 남편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죠. "당신은 이렇게 먹는 게 좋아요."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애 취급 한 것 같아서였죠. 아내가 컵을 엎지르는 바람에 친구 부인의 스커트가 젖었습니다. 남편이 대신 사과한다면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미안해요 이 사람이 조금 얌전하지 못해서...., " 아내의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해졌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망신 준 것 같아서였죠. 그리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였습니다. 남편의 손이 자꾸만 아내의 허벅지를 긁습니다. 아내가 야멸차게 남편의 손을 밀어내자 남편이 머쓱해하면서 말합니다. "난 내 다리인 줄 알았지. 어쩐지 아무리 긁어도 시.. 2023. 2. 24.
목사의 기쁨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게 환대했고 신뢰했습니다. 선량한 성직자라고 믿었으니까요. 하는 일도 선량했습니다. 시골 마을을 다니며 집안에서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살림살이를 사주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헐값에 사들이는 오래된 살림살이라는 것이 정체는 이러했습니다. 주인은 모르고 전문가만 아는 고가의 고가구와 미술품들.....,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성직자의 옷을 입고 다녔고 그 덕에 원하는 물건들을 헐값에 가질 수 있었는데요. 어느 날 18세기 영국 가구의 명작으로 이름난 치펜데일의 장식장을 발견했습니다. 한눈에 명품임을 알아봤지만 티를 내면 주인이 값을 높게 부를까 봐 형편없는 모조품이라고 비하했죠. 그리고는 꾀를 냅니다. "장식장은 필요 없고 다리만 필요하니 싸게 팔면 사겠소." 헐.. 2023. 2. 23.
어머니의 바느질 학창 시절 한 친구가 울적한 얼굴로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서 집안에 있는 이불이라는 이불을 다 꺼내놓고 시침질을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불 바느질이 다 끝나니까 그다음에는 커다란 커튼을 만들고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하루종일 바느질만 하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차마 물을 수 없었죠.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친구 엄마가 바느질하는 모습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울적할 때,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사소한 일, 몸을 움직여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일이야말로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나이가 됐으니까요. 문제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2023. 2. 22.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 눈이 많이 내린 뒤 산에서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서 툭툭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 부러지면 어떡하나' 싶지만 숲의 입장에선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하죠. 눈이 쌓여서 부러질 정도로 약한 나뭇가지라면 숲을 위해서 도태되는 것이 맞다는 논리에서 입니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쓰러진 나무에서는 버섯이 자라고 부러진 나뭇가지는 가지치기 역할을 한 샘이니 오히려 건강한 숲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많이 오면 많이 와서, 추우면 추워서 걱정이 태산 같은 우리들 세상에 비해서 추우면 추운 대로 눈이 많이 오면 오는 대로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인간세상이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는 자연과 같아서는 곤란하겠죠. 그래도 자연처럼 무심할 수 없어 근심걱정으로 ..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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